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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학

90억 년 가까이 날아온 수소의 희미한 전파, CHIME가 다른 은하 목록 없이 잡아냈다

by 민뉨 2026. 10.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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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억 년 가까이 날아온 수소의 희미한 전파, CHIME가 다른 은하 목록 없이 잡아냈다

우주에는 눈으로 볼 수 없는 아주 희미한 ‘라디오 지도’가 있습니다. 먼 은하들에 퍼져 있는 중성수소가 내는 21cm 전파입니다.

문제는 이 신호가 우리 은하와 지상의 전파 잡음보다 압도적으로 약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과거에는 외부 은하 목록과 대조해야 우주 수소 신호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CHIME 연구팀이 마침내 자기 관측 데이터만으로 약 80~90억 년 전 우주의 중성수소 신호를 통계적으로 검출했습니다.


먼저 바로잡을 것: ‘90억 년을 날아온 한 줄의 신호’는 아니다

제목만 보면 아주 먼 곳의 수소 원자 하나가 보낸 전파를 안테나가 직접 포착한 것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실제 연구는 다릅니다.

CHIME Collaboration은 94일 밤의 관측 데이터를 이용해 608.2~707.8MHz 범위에서 중성수소 21cm 방출이 만드는 통계적 요동, 즉 자동 파워스펙트럼(auto-power spectrum)을 측정했습니다. 적색편이는 z=1.01~1.34이며 전체 검출 유의도는 12.5σ였습니다.

이 적색편이는 대략 우주가 현재보다 훨씬 젊었던 시기, 약 80~90억 년 전을 바라보는 관측에 해당합니다. 따라서 ‘90억 년 전 수소 신호’는 이해하기 쉬운 표현이지만 정확히는 그 시대 우주에 분포한 중성수소의 집단적인 21cm 신호입니다.


21cm 신호는 무엇일까?

중성수소 원자는 양성자와 전자 하나씩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두 입자의 스핀 상태가 바뀔 때 매우 특정한 파장의 전파가 나올 수 있는데, 원래 파장이 약 21cm, 주파수로는 약 1420MHz입니다.

하지만 우주가 팽창하는 동안 아주 먼 곳에서 출발한 전파의 파장은 늘어납니다. 그래서 z≈1 부근의 21cm 신호는 CHIME가 관측하는 수백 MHz 대역까지 내려옵니다.

천문학자에게 이것은 장점입니다. 주파수를 보면 대략 어느 거리, 어느 시대에서 온 수소인지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늘의 방향과 주파수를 함께 측정하면 우주의 중성수소 분포를 3차원으로 추적할 수 있습니다.

CHIME는 접시를 움직이지 않는다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 펜틱턴 인근 Dominion Radio Astrophysical Observatory에 있는 CHIME는 일반적인 거대한 회전식 전파망원경과 생김새부터 다릅니다.

공식 설명에 따르면 CHIME는 20m×100m 크기의 원통형 반사경 4개로 구성되며 움직이는 부품이 없습니다. 지구가 자전하면서 하늘이 망원경 위를 지나가도록 두고 북쪽 하늘을 매일 반복 관측합니다.

관측 대역은 400~800MHz입니다. 넓은 하늘을 빠르게 훑고 방대한 전파 데이터를 디지털 처리하기 때문에 중성수소 강도지도(intensity mapping)에 적합합니다.


이번 검출이 특별한 이유는 ‘외부 은하 지도’가 필요 없었다는 점이다

CHIME는 이미 2022년에도 먼 우주의 21cm 방출을 검출했습니다. 당시에는 eBOSS가 제공한 발광적색은하, 방출선은하, 퀘이사 위치와 CHIME 전파지도를 서로 겹쳐 신호를 확인했습니다.

이번 연구의 핵심 차이는 외부 은하 조사에 의존하지 않고 CHIME 데이터 자체의 자동상관(auto-correlation)만으로 우주론적 21cm 신호를 검출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21cm 강도지도의 원래 목표와 연결됩니다. 은하 하나하나를 찾아 세는 대신 많은 은하에 들어 있는 수소의 합쳐진 전파 밝기를 지도화하면 훨씬 큰 우주 부피를 효율적으로 조사할 수 있습니다.

가장 큰 적은 먼 우주가 아니라 가까운 전파다

우주론적 21cm 신호는 매우 희미합니다. 우리 은하의 싱크로트론 전파, 다른 천체의 연속 전파, 인간이 만든 무선 신호 등은 훨씬 밝습니다.

연구팀은 무선주파수간섭(RFI)을 찾아 제거하는 방법, 주파수에 따른 망원경 빔 변화의 영향을 줄이는 처리, 전경(foreground) 필터링 등을 개선했습니다.

그리고 전체 대역뿐 아니라 두 개의 독립적인 하위 대역에서도 신호를 확인했습니다. 논문에 따르면 z≈1.08에서는 8.7σ, z≈1.24에서는 9.2σ 유의도로 검출됐습니다.

이런 독립 검증은 희미한 우주 신호가 데이터 처리 과정에서 우연히 만들어진 흔적일 가능성을 점검하는 데 중요합니다.


수소 지도로 우주의 팽창을 읽는다

중성수소는 은하와 거대 우주 구조를 따라 분포합니다. 따라서 21cm 밝기의 미세한 변화는 보이지 않는 우주 구조를 추적하는 표지가 될 수 있습니다.

CHIME의 장기 목표 가운데 하나는 이 거대한 수소 지도를 이용해 바리온 음향 진동(BAO)의 흔적을 측정하는 것입니다. BAO는 초기 우주에서 만들어진 특징적인 거리 척도로, 서로 다른 시대에 그 크기가 어떻게 보이는지를 비교하면 우주의 팽창 역사를 연구할 수 있습니다.

이번 결과가 곧바로 암흑에너지의 정체를 밝혔다는 뜻은 아닙니다. 더 정확하게는 그런 정밀 우주론을 위해 필요한 21cm 자체 신호를 외부 은하 지도 없이 추출할 수 있음을 입증한 중요한 단계입니다.

후속 연구는 이미 ‘수소의 양과 분포’를 묻고 있다

2026년 CHIME Collaboration은 이 자동 파워스펙트럼 측정을 어떻게 해석할지 다룬 후속 연구도 공개했습니다. 연구진은 중성수소의 우주론적 밀도와 수소가 물질 분포를 얼마나 따라가는지를 나타내는 편향(bias) 등을 제한하고 시뮬레이션과 비교했습니다.

일부 시뮬레이션과 측정 사이에는 차이도 나타났습니다. 연구팀은 이를 단순히 ‘수소가 예상보다 많다’고 결론내리기보다 비선형 규모에서 수소의 운동과 군집화 모델을 더 조사해야 할 문제로 보고 있습니다.

즉 이번 검출은 끝이 아니라, 이제부터 그 희미한 신호가 우주의 물질과 은하 진화에 대해 무엇을 말하는지 읽는 단계로 넘어갔다는 뜻입니다.


결국 CHIME가 잡아낸 것은 ‘우주의 오래된 라디오 지도’다

CHIME가 들은 것은 한 번 번쩍이는 강력한 전파폭발이 아닙니다. 수많은 먼 은하와 그 주변의 중성수소가 남긴 너무 희미한 전파 무늬입니다.

그 무늬는 우리 은하와 지구 주변의 훨씬 강한 전파 뒤에 묻혀 있었습니다. 94일 밤의 데이터를 쌓고 전경과 간섭을 정교하게 걷어내자, 약 80~90억 년 전 우주의 구조가 통계적으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다른 은하 목록이 답안지 역할을 하지 않았습니다.

CHIME가 자기 데이터만으로 그 오래된 수소 지도를 찾아냈다는 것, 바로 그것이 이번 연구의 가장 큰 의미입니다.

핵심 정리

  • CHIME는 94일 밤의 관측으로 z=1.01~1.34의 우주론적 21cm 자동 파워스펙트럼을 측정했습니다.
  • 관측 주파수는 608.2~707.8MHz였습니다.
  • 전체 검출 유의도는 12.5σ였습니다.
  • 외부 은하 카탈로그와 교차상관하지 않고 CHIME 데이터 자체만으로 검출했다는 점이 핵심입니다.
  • CHIME는 20m×100m 원통형 반사경 4개로 이루어지고 움직이는 부품 없이 지구 자전을 이용해 하늘을 훑습니다.
  • 이번 신호는 한 천체의 단일 전파가 아니라 먼 우주의 중성수소 분포가 만든 통계적인 집단 신호입니다.
  • 장기적으로 21cm 강도지도는 거대 우주 구조와 BAO, 우주 팽창 역사를 연구하는 데 활용될 수 있습니다.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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